등산하는 걸 좋아합니다. 젊었을 때는 일하느라 주말 가까운 곳을 다니는 것만 해도 행복할 정도로 바빴는데요. 나이가 들어 이제는 시간이 생겼는데 체력이 문제네요. 얼마나 더 계속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고요. 위험한 구간에선 전에 없던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버킷리스트에서 포기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일본 북알프스의 야리가다케(槍ヶ岳 / やりがたけ, 3,180m)등정인데요. 창처럼 뽀죡하게 생긴 봉우리로 '일본의 마터호른'이라고 불립니다. 하루에 올라갈 순 없고요. 산장생활을 하며 최소한 2-3일은 걸리는 코스이고 일부 위험한 구간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점점 도전할 희망을 접으며 마음속으로만 담아 두고 있었는데요.
얼마 전 지인이 야리가다케를 가는 코스중 하나인 오모테긴자 종주를 하자고 청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아름답다는 종주코스. 순간 망설였습니다. "과연 내 체력으로 오를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마지막 기회 같은 생각도 들어 더 재지않고 바로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일본에 왜 알프스가 있을까
그런데 일본에 웬 알프스일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도 20여년전 처음 한 산악잡지에서 알프스란 말을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목이 그런 건가 하고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함께 실린 사진을 보고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만년설이 남아있는 산봉우리와 아름다운 자연과 웅장한 산세는 국내산에 비교할 바가 못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유럽의 알프스 산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 몇번 일본 북알프스를 방문하기도 해서 친근해졌는데요. 북알프스는 일본 중부지역에 기후현, 도야마현, 나가노현, 니가타현에 걸쳐 있는 히다산맥의 별칭입니다. 일본산에 알프스란 이름을 붙인 건 19세기말 일본에 온 영국인 지질학자이자 등산가였던 윌리엄 고울랜드(William Gowland)입니다. 중부의 여러 산을 답사하면서 만년설과 빙하 지형과 웅장한 봉우리로 연결된 히다산맥이 유럽의 알프스와 닮았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또 한 명의 영국인 등산가이자 선교사인 월터 웨스턴(Walter Weston)이 여러산을 실제 등반하고 1896년 '일본 알프스의 등산과 체험'이라는 책을 영어로 발행했습니다. 세계에 일본 알프스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지요.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
이 일본 알프스는 북알프스로 불리는 히다산맥뿐만 아니라 중앙알프스인 기소 산맥, 남알프스인 아카이시산맥이 포함되는데요. 현재 우리가 부르는 일본 알프스는 이 세 거대한 산맥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북알프스는 가장 험준하고 장엄한 곳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고산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쿠바산 (白馬岳 / はくばだけ) 을 비롯해 가미코치, 야리가다케, 호다카 연봉 (穂高連峰 / ほたかれんぽう)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명봉들이 줄지어 있고, 드라마틱한 산악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소코마가타케 (木曽駒ヶ岳 / きそこまがたけ, 2,956m)가 상징인 중앙알프스는 로프웨이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초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고산 초원과 빙하 지형의 흔적을 따라 걷는 트레일이 인기인데요. 하루 산행으로 알프스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어 초보자에게도 부담이 적고, 가족 단위 트레킹에도 적합하다고 합니다.
남알프스는 북알프스보다 부드럽지만 깊고 웅장한 산세를 자랑합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기타다케(北岳 / きただけ, 3,193m)가 있는 곳이고요. 비교적 조용하고 깊은 산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자연이 주는 치유의 에너지를 느끼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림한계선을 넘으며 다양한 고산식물과 야생동물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오모테긴자(表銀座)는 무엇인가
앞에서 북알프스의 야리가다케 등정이 제 버킷리스트라고 말씀드렸지요? 야리가다케를 가는 루트가 여럿 있는데 그중 가장 아름답고 초보자도 비교적 수월하게 갈 수 있는 코스로 꼽히는 곳이 오모테긴자입니다. 오모테(表)는 앞이란 뜻이고요. 긴자(銀座)는 어디서 많이 들어보시지 않으셨나요? 도쿄의 유명한 고급 백화점 거리 긴자. 그 긴자처럼 화려하고 사람이 많다고 해서 긴자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나카보우온천에서 시작해 엔잔소 오텐쇼다케, 야리가다케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북알프스의 정면 무대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하늘 길입니다. 3000미터 가까운 고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데요. 제가 오르고 싶어 하는 야리가다케의 뾰족 봉우리를 향해 걸어가는 거지요. 일본 등산가들은 물론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종주 코스 중 하나예요. 무엇보다 저 같은 초심자들도 도전할 수 있는 건 중간중간 산장들이 있어서 숙식이나 물 공급이 잘 된다는 점입니다. 짐 부담 없이 산행할 수 있는 이유이지요.
한 지리학자는 여행은 세번을 해야 하고 세 번째가진정한 여행이라고 했는데요. 첫번째가 가기 전 여행을 준비하면서, 두 번째는 실제 방문해서, 세 번째는 다녀와서 후기로 정리하면서 되돌아보는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3박 4일 오모테긴자 종주를 준비하면서 첫번째 여행으로 이 글을 씁니다. 자료를 찾고 예약을 하면서 가능한 제 언어로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걷는 하늘 길, 오모테긴자. 이 낯선 이름을 벌써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두근두근.
대자연의 품속을 거니는 깊은 힐링 여행을 꿈꾸며
당일의 등산도 참 좋지만 진짜 ‘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험은 생각보다 특별하고 아름다워요, 고산증이 올 수도 있는 곳이라 두렵기도 하지만 맑은 날엔 발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운해(雲海), 눈앞이나 양옆에는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때로는 고산의 새와 꽃들이 길을 안내해주기도 해요.
그런 길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도 명상같은 시간이죠. 자연 속에서 나를 비워내고, 또 하루하루 걸으며 별을 보고, 자신의 의지대로 목표에 도달하는 기쁨. 그건 마치 '대자연을 배경으로 누리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여행이자, 가장 깊은 힐링'이 아닐는지. 그런 기쁨을 상상하고 누리면서 차근차근 준비해 볼게요.